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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 함께] 2008년 8월호

조회수475작성일2014-06-13

*(2008년 8월 당시 김태훈 대표의 개명 전 이름 : 김용길)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한참 자라나는 청소년들이니까 뭐니뭐니해도 먹을거리가 좋을 것 같았다. 참외, 포도, 수박. 나름대로 제철 과일을 고른 다음 ‘부탁 반 위협 반(?)’으로 몇 천 원을 깎고 값을 치렀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성서와함께입니다. 지금 ○○가게 앞에 와 있는데요, 어떻게 찾아가면 될까요?” “아, 그러세요. 금방 나갈 테니 기다리세요.” 전화를 끊고 5분이 지나자 길 건너편에서 건장한 청년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남북의 징검다리’인 새터민 청소년들과 함께 행복을 만들어 가는 김용길(33살) 씨다.

“5년 전에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운영하는 ‘하이모’(하나를 이루어가는 모임)에서 처음 새터민 아이들을 만났어요. 주중에는 회사에 다니고 주말이면 항상 아이들과 함께 어울렸는데, 재미와 보람뿐 아니라 마음 한 켠에 있는 어떤 묵직함도 느꼈죠. 그때 하룡이를 처음 만났어요.”
고향이 함경남도 함흥인 재원(가명·15살)이는 2005년에 북한에서 나왔다. 먼저 탈북하여 남한에 살고 있던 고모가 재원이와 어머니를 데려 오려고 사람을 보냈다. 회령에서 중국으로 넘어갔고 그곳에서 며칠을 머문 뒤 한국으로 왔다. 두만강을 건널 때 힘들기는 했지만, 고모가 어떻게 손을 썼는지 국경을 쉽게 넘을 수 있었다.

“처음 아이 집에 갔을 때 재원이 어머니는 지방에 일하러 가고, 아이 혼자 집에 있었어요. 처음 저를 본 아이가 이런저런 힘든 걸 이야기했는데, 그중에 저를 무척 화나게 한 말이 있었어요. 아이가 학교에서 들은 건데, ‘너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말이었죠. 어떻게 초등학생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는지…. 한참 이야기를 나눈 뒤 ‘그럼, 또 놀러 올게’ 하고 집으로 돌아왔죠. 보름쯤 지나 다시 찾아갔더니 초인종을 눌러도 인기척이 없었어요. 혹시나 해서 문을 열었더니 열려 있더라구요. 집안이 컴컴하고 TV 소리만 들려 가 보니 아이가 텅 빈 방에서 가방만 풀어 놓고 잠자고 있더라구요. 코끝이 찡해지면서 그냥 있을 수만은 없어 집에 전화를 걸었죠. ‘오늘 밖에서 자고 내일 들어갈게요.’ 그렇게 내일 집에 들어가겠다고 한 게 지금까지 못 들어가고 있어요. 하하.”

“처음에는 북에 친구들도 있고 해서 오기 싫었는데, 막상 와 보니까 싫었던 게 없어졌어요. 지금도 북에는 외할머니가 살아 계세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재원이 덕분에 분위기가 밝아졌다. 그러는 사이 학원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철준(이철준·20살) 씨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용길 씨 말로는 가장 최근까지 북한에서 살다 온 친구란다.

“작년 6월에 혼자 이곳에 왔어요. 대성공사(국가정보원)와 하나원(새터민들의 사회 정착을 위해 설치한 통일부 기관)을 거쳐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건 작년 9월이구요. 2003년에, 그러니까 하룡이 나이 때 엄마 손에 이끌려 중국을 거쳐 몽골로 향하다가 중국 공안에게 잡혔고, 결국 북송되어 보위부 수용소에 갇혔죠. 당시 저는 미성년자라 육개월 뒤에 풀려 났는데, 부모님은 나올 수가 없었어요. 혼자 3년을 살다가 다시 탈북하여 중국으로 갔는데 그곳 생활은 이만저만 힘들지 않았어요. 분기마다 한 번씩 중국 공안이 단속을 했으니 숨어 있기도 힘들었지요. 그러다가 베트남을 거쳐 캄보디아까지 갔고, 그곳 한국 대사관을 통해 여기로 오게 되었습니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지 않았다면 어쩌면 북한에서 나오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우리가 잘못하긴 했지만, 북한 정부에 대해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어요.”

용길 씨가 거들었다. “별로 힘들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쉽게 남한으로 오는 건 아닙니다. 누구나 다 겪는 일이라 그저 통과의례쯤으로 여기는 거죠. 중국과 여러 나라의 국경을 넘을 땐 하루가 아니라 짧게는 보름, 길게는 한 달 내내 걷죠. 몽골을 거쳐 온 한 아이는 오면서 길을 잃었는데 폭설까지 내려 같이 간 여덟 명이 서로 끌어안고 잤대요.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자기가 끌어안고 잔 아줌마 두 명과 임신한 아줌마까지 동사했대요. 갖은 고생을 하며 한국에 왔지만 발이 동상에 걸려 발가락 하나를 잘라야 했죠.”

처음부터 다소곳이 앉아 말없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원일(김원일·15살)이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다. 함경북도 남양이라고 수줍게 말하는 원일이는 2004년에 엄마와 함께 북에서 나와 몽골을 거쳐 이곳에 왔고, 엄마는 지금 지방에 머무르고 있다. 용길 씨뿐 아니라 학교 담임선생님의 칭찬도 자자하다.

김용길 님은 새터민 청소년 그룹홈인 ‘우리집’에서 다섯 명의 남자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내일을 꿈꾸며 즐겁게 살고 있다.

[출처] 2008년 8월호 성서와 함께|작성자 김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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